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의성군

덕양서원(德陽書院)

자즐보 2014. 4. 30. 10:11

 

 

 

덕양서원(德陽書院)

소재지 : 의성군 춘산면 대사리 617 소재 / 경북 문화재자료 제247호

 

 

백촌 김문기(1399∼1456)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문기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형조참판·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세조 2년(1456) 사육신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덕양서원은 인조 3년(1625)에 세웠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해체되었다가 1948년 지방유림이 복원하였다.

경내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상충사, 경의당, 동재와 서재, 전사청 등이 있다.

 

 

 

 덕양서원 전경

 

 

 

 

 

忠毅公 金文起先生 死六臣顯彰紀念碑

충의공 김문기선생 사육신현창기념비

 

 

 

백촌 김문기(1399/정종 1 ~ 1456/세조 2)

본관은 김녕(金寧).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할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순(順)이며, 아버지는 증 영의정 관(觀)이다.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예문관검열·사간원헌납·병조정랑·의정부사인 등을 지냈다.

1445년 함길도도진무(咸吉道都鎭撫), 1450년에는 병조참의를 역임했다.

1451년(문종 1) 함길도도관찰사로 있을 때 안변·정평 등지에 둔전(屯田)을 설치했다.

 

공조판서 겸 삼군도진무에 오른 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1456년(세조 2) 박팽년·성삼문 등 사육신과 단종복위를 계획한 뒤 병력동원을 맡았다.

그러나 김질의 밀고로 사전에 발각되어, 모의에 가담한 사육신, 아들 현석과 함께 처형당했다.

 

사육신은 그뒤 남효온이 쓴 〈추강집〉에 육신전(六臣傳)이 실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뒤,

1691년(숙종 17) 복관되었다. 그도 1731년(영조 7)에 복관되었으며,

1791년(정조 15) 정조가 규장각과 홍문관에 명하여 〈어정배식록〉을 편정(編定)할 때

삼중신(三重臣:민신·조극관·김문기)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금릉군 지례 섬계서원(剡溪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1977년 7월 국사편찬위원회는 사육신 문제를 논의한 끝에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顯彰)하고, 그의 가묘를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 설치했다. 그러나 종래의 사육신 구성은 변경하지 않았다.

 

 

 

 

 

 

유의문(由義門)

 

 

 

 

덕양서원 경의당(景義堂)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으로 단정스런 풍모가 느껴진다.

가운데 두칸은 대청마루로 벽에 붙어 있는 景義堂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진수재(進修齋) 

 

 

 

긍척재(兢惕齋)

 

 

 

 

경의당 측면 

 

 

 

 

 

 

경의당 뒤편의 상충사 

 

 

 

 

 

 

상충사(尙忠祠)

김문기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

 

 

 

 

 

 

 

 

 

 

 

 

 

 

 

대사리 마을 어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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