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 안보

옛 京城의 서울 모습

자즐보 2014. 1. 5. 23:38

                               

 

 

남산공원 야외 음악당

 
경성 시가지
 
京城 東洋拓殖株式會社 

일제가 1908년 12월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한 식민지 

경제 수탈의 본거지. 을지로 2가에 있었다. 일본 정부로 부터 
거액의 융자를 받아서 한국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토지조사사업이 끝났을 무렵에는 7만8천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여
한국 최대의 지주가 되었다. 東拓의 소작료는 일반 민간보다 

 

상당히 고율이었을 뿐 아니라 수탈 방법도 악랄하여 
한국인들의 東拓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었다.
현 을지로쪽 명동 입구이다.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시가지
경성 太平通
 
조선은행 앞 대광장
 
경복궁 集玉薺
 
 현 충무로 입구 신세계백화점
이 건물은 1934년에 준공되었다. 
지하1층, 지상 4층 연건평 3,000여평의 건물로서 양식주의에서 
근대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이다.
 
종로 2가 거리
 
京城驛에 서 남대문 방향

 
동대문 밖 조선인 마을
 
경복궁 광화문
 
경성 동대문
 
종로 보신각
 
경성 혜화문(惠化門).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1684년(숙종 10) 문루(門樓)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여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虹霓)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만들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北門
(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경복궁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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