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일직면

허영정(許穎亭)

자즐보 2013. 5. 14. 15:31

 

 

허영정(許潁亭)

 

허영정은 조선 후기 영양남씨 남응원(南應元,1539~1611)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자로,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남응원의 자는 인중(仁仲), 호는 허영정(許潁亭)이다.

남응원남건(南健)의 아들인데, 부모상을 연이어 당하자

6년간 시묘살이를 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1580년 여강서원(廬江書院) 등 사림의 추천으로 감사 유홍(兪泓)

정지연(鄭芝衍) 등이 차례로 임금한테 남응원의 효성을 아뢰어

임금이 포상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1675년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사복시정에 증직되었으며,

그 후 봉암사(鳳巖祠)에 제향되었다.

허영정은 반누각식(半樓閣式) 정자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은

두 산줄기가 끝나는 부분에 있다. 허영정 바로 앞에는 남응원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와 정려각이 있다.

 

 

 

 

 

 

남응원 정려각 & 정려비

 

 

 

孝子  贈通訓大夫司僕侍正宣敎郞南應元之閭

효자 증통훈대부사복시정선교랑남응원지려

 

 

 

남응원(南應元, 15391611)

선생의 자는 인중(仁仲)이고 호는 허영정(許潁亭)이며 참봉 남허건(南許健)의 아들로 중종 34(1539)에 태어났다. 장대한 체격과 청수한 자질에 몸가짐이 의젓했다. 효성이 극진하여 도타운 정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매 편안한 거처와 맛있는 음식을 공궤하면서 한결같이 화순한 기색으로 뜻을 받들었다. 어버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바쳐 봉양했다. 상사를 당하여 슬픔이 지나쳐 물을 넘기지 못하면서도 울부짖음을 멈추지 않았고, 잠시도 상복을 벗지 않으며 죽을 마시며 3년 상을 마쳤다. 이어 후상(後喪)을 당하여 또한 그렇게 하매 산속 여막에서 잇달아 6년을 지냈다. 그런 뒤엔 어버이 묘소가 바라보이는 자리에 정사를 지어 거처하면서 종신토록 추모의 정성을 한결같이 했다.

선생은 사람을 대함에 친소 귀천을 가림이 없이 참됨과 믿음으로 했으며, 에 임하여는 삼가고 성실하여 원근이 모두 존경했다. 임진왜란에 왜적이 엄습해오자 온 마을이 창황하여 미처 말에 안장을 얹지 못한 채 타고 달리거나 신발도 신을 겨를이 없어 맨발로 뛰는 등 경황이 없는 판에도 선생은 조용히 서당과 묘소를 살폈으니, 아무리 창졸한 경우에도 태연함과 효성이 이러했다.

선조 13(1580) 여강서원(廬江書院) 등 고장 사림의 천장(薦狀)으로 감사(監司) 유홍(兪泓), 정지연(鄭芝衍) 등이 차례로 선생의 효성과 행검을 조정에 알려 임금이 포상을 내렸으나, 실행이 소문에 미치지 못한다하여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14,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또 조정에 계청하여 다시 포상을 내림과 함께 벼슬에 등용하라는 분부가 있었다. 광해 2(1611)에 몰하니 향년 73세였다. 숙종 원년(1675)에 정려 내리고, 5년에 통훈대부 사복시정(通訓大夫 司僕寺正)에 증직되었으며, 영조18년 사림에서 봉암사에 제향하였다.

 

 

 

일직면 광연리 마을 보호수 670년 생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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