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계리 약계정
약계정은 길안면 소재지에서 청송방면으로 914번 지방도를 따라
양곡재 초입에 안내간판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곳에서
좌측으로 약 4km 세멘포장길을 달려 가면 용계 마을에 있다.
용계라는 명칭은 약계(藥溪) 권순기선생이 마을 뒷산을 보고
용이 누운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약계정은 조선 후기 약계 권순기(權舜紀, 1679~1746)가 강학을 하던 정자이다.
권순기는 본관이 안동, 자는 여칙(汝則)이다. 1679년(숙종 5) 안동부 동쪽
산곡리에서 태어난 권순기는 호군(護軍) 권후중(權後重)의 손자이고,
지와(止窩) 권시량(權是亮)의 계자이다. 권순기의 생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 권시창(權是昌)이다.
권순기는 어려서부터 재기가 특출하고 학문이 뛰어났으나 과거에 응시할
적령기의 전후 6년에 걸쳐 생가(生家)와 양가(養家) 부모의 상을 당해 시기를 놓쳤다.
그 후 어버이가 살아 있지 않아 장차 영친(榮親)할 일이 없다고 하면서
과거 공부를
폐하였으며, 가정(家政)을 주간하여 선대의 업을 계술하는 것을 위무로 삼았다.
권순기는 고향에 있으면서 때때로 밀암(密庵) 이재(李栽),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호와(壺窩) 류현시(柳顯時) 등 여러 선비와 교류하며 고향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대방(大方)의 담론을 듣고 서로 편지를 왕래하여 가영(歌詠)을 창수하였다.
후에 학행으로 추천되어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만년에 약계정을 지어 소요 자적하였다.
약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가운데에 마루방을 두고
좌측과 우측에 온돌방이 배열되어 있다. 이들 세 방 앞에는
비교적 넓은 툇마루를 시설하고, 세 면에는 난간을 설치한 쪽마루를 둘러
마치 누각처럼 꾸몄다. 마루방 앞에는 4분합 들문을 달고
온돌방 앞에는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원래 반변천 옆에 있었으나 수해로 유실되어 1897년(고종 34)
검박골마을 안으로 이건하였고, 1989년 임하댐 건설로
다시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좌협칸 온돌방의 누마루 쪽 출입문 위 돈수재(敦修齋)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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