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운지정 / 望雲之情 : 望 바랄 망, 雲 구름 운, 之 갈 지, 情 뜻 정
겉뜻 : 구름을 바라보는 뜻속뜻 : 자식이 객지에서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
유래 : 당(唐)나라「적인걸(狄仁傑)이 병주 법조참군(幷州法曹參軍)에 있을 때 그 어버이는 하양(河陽) 땅 별업(別業)에 계신데, 인걸이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반복하여 돌아보면서 흰 구름이 외롭게 나는 먼 곳을 좌우 사람에게 일러 말하되 "내 어버이가 저 구름이 나는 아래에 계신데, 멀리 바라만 보고 가서 뵙지 못하여 슬퍼함이 오래되었다." 하고 구름이 옮겨 간 뒤에 이에 산에서 내려왔다.
*개과천선 / 改過遷善 : 改 고칠 개, 過 지날 과, 遷 옮길 천, 善 착할 선
겉뜻 : 지난 허물을 고치고 착하게 됨.
유래 : 진(晉) 혜제(惠帝) 때 주처(周處)라는 사람은 어릴 적에 방탕한 생활을 하다 철이 들어 새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이에 동오(東吳)에 가서 학자 육기(陸機)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육기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서 새사람이 된다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면 자네의 앞날은 무한하네”라고 하였다. 이후 10년간 학문에 정진한 주처는 마침내 학자로서 입신양명하였다.
*관포지교 / 管鮑之交 : 管 대롱 관, 鮑 절인 물고기 포, 之 갈 지, 交 사귈 교
겉뜻: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말,속뜻: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없는 교제
유래 : 관중과 포숙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는 관중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아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라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섬기게 되고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두 공자는 왕위를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소백이 승리했다. 그는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政事)를 맡겼다. 재상(宰相)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성공한 후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싸움터에서 도망쳐 온 적도 있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묶이는 치욕을 당했지만 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 보다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을 포숙아다."
*문경지교 / 刎頸之交 : 刎 목 벨 문, 頸 목 경, 之 갈 지, 交 사귈 교
겉뜻 :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속뜻 :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유래 : 전국시대(戰國時代) 趙(조)의 혜문왕(惠文王) 때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공을 세웠지만 환관 무현(武賢)의 식객에 불과했던 인상여를 경대부(卿大夫)에 임명하자 염파는 불만이 대단하였다. 그래서 인상여를 만 나면 망신을 주리라 생각하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니 부하들이"왜 그렇게 염장군을 두려워합니까?"라고 물으니 인상여가"秦(진)나라가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 리 둘이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염파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염파가 옷을 벗어 살을 드러내고 곤장을 지고 인상 여의 집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하기를"비천한 사람이 장군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인상여와 염파가 문경지우가 되었다. 廉頗(염파)가 肉袒負荊(육단부형)하고 至門(지문)하여 謝罪曰(사죄왈) 鄙賤之人(비천지인)이 不知將軍寬之如此(부지장군관지여차)라. 卒(졸) 相與驩(상여환)이 爲刎頸之友(위문경지우)하다.
*수어지교 / 水魚之交 : 水 물 수, 魚 물고기 어, 之 어조사 지, 交 사귈 교
겉뜻 : 물과 물고기의 사귐.속뜻 : 임금과 신하 사이의 두터운 교분. 부부의 친밀함.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유래 :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와 같은 용장이 있었지만, 천하의 계교를 세울 만한 지략이 뛰어난 모사(謀士)가 없었다. 이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과 같은 사람을 얻었으므로, 유비의 기쁨은 몹시 컸다. 그리고 제갈공명이 금후에 취해야 할 방침으로,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눌러서 그 곳을 근거지로 할 것과 서쪽과 남쪽의 이민족을 어루만져 뒤의 근심을 끊을 것과 내정을 다스려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실리를 올릴 것과, 손권과 결탁하여 조조를 고립시킨 후 시기를 보아 조조를 토벌할 것 등의 천하 평정의 계책을 말하자 유비는 그 계책에 전적으로 찬성하여 그 실현에 힘을 다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비는 제갈공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어 두 사람의 교분은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다. 그러자 관우나 장비는 불만을 품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제갈공명(이 때 공명의 나이는 28세)만 중하게 여기고 자기들은 가볍게 취급받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이 이리 되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자, 관우와 장비 등은 더 이상 불만을 표시하지 않게 되었다.
*금란지교 / 金蘭之交 : 金 쇠 금, 蘭 난초 란(난), 之 갈 지, 交 사귈 교
겉뜻 :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속뜻 : 두 사람간에 서로 마음이 맞고 교분이 두터워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 나갈 만큼 우정이 깊은 사귐을 이르는 말
유래 : 사람들과 한가지로 하여 먼저는 울부짖고 뒤에는 웃는다." 공자는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는 혹은 나가 벼슬하고 혹은 물러나 집에 있으며 혹은 침묵을 지키지만 혹은 크게 말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 을 하나로 하여 말하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몹시 친밀한 사이를 금란지교(金蘭之交)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죽마고우 / 竹馬故友 : 竹 대 죽, 馬 말 마, 故 연고 고, 友 벗 우
겉뜻 :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옛 친구라는 뜻
속뜻 :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내며 자란 친구를 이르는 말
유래 : 진(秦)나라 12대 황제(皇帝)인 간문제 때의 일이다. 촉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라는 은사를 건무장군 양주지사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이 되어 반목했다. 왕희지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 중 하나인 후조의 왕석계룡이 죽고 호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秦)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 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막역지우 / 莫逆之友 : 莫 없을 막, 逆 거스릴 역, 之 갈 지, 友 벗 우
겉뜻 : 서로 거스르지 않는 친구라는 뜻
속뜻 : 아무 허물없이 친한 친구를 가리키는 말
유래 :《장자(莊子)》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의 우화가 나온다. 이 우화는 둘 다 바깥의 사물에 얽매이지 말고 천리(天理)를 좇아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그 도입부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도 물론 가공 인물이다.
‘어느 날 자사(子祀)·자여(子輿)·자려(子) ·자래(子來) 네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능히 없는 것으로써 머리를 삼고, 삶으로써 척추를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겠는가. 누가 생사존망(生死存亡)이 일체임을 알겠는가. 내 이런 사람과 벗이 되리라.” 네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四人 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그 뒤로 이들이 병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초연한 모습이 이어진다.
또다른 이야기를 보면, ‘어느 날 자상호(子桑戶)·맹자반(孟子反)·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이 서로 더불어 말하였다. “누가 능히 서로 사귀는 게 아니면서도 서로 사귀고, 서로 돕는 것이 아니면서도 서로 도울 수 있을까. 누가 능히 하늘에 올라 안개 속에서 놀고 끝이 없는 곳(無極)에서 자유롭게 다니며, 서로 삶도 잊은 채 다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세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데가 없어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그 뒤는 자상호의 장례에 공자와 자공을 내세워 예로써 마음을 가두려는 것을 비웃고 있다.
이와 같이 막역지우란 본래 천지의 참된 도를 깨달아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 간의 교류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서로 허물없는 친구 사이를 모두 가리키게 되었다.
*가인박명 / 佳人薄命 : 佳 아름다울 가, 人 사람 인, 薄 엷을 박, 命 목숨 명
겉뜻 :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다.유래 : 미인은 불행한 일이 따르기 쉽고 요절(夭折)하기 쉽다는 말이다. 이 말은 소식이 양주 지방의 장관으로 있을 때 30세가 넘은 아름다운 여승의 파란만장한 삶을 유추하여 지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고로 아름다운 여인은 명이 짧은 경우가 많도다[自古佳人多薄命]”에서 유래한다. 양귀비가 안록산의 난 중 군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 그 예라고 하겠다. 그 이외에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요절했을 때도 이런 말을 사용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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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 형벌로 다리가 잘린 왕태(王駘)는 문하생(門下生)이 공자(孔子)의 문하생에 필적할 만큼 많았는 데, 상계(商季)가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겨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왕태는 자기 몸을 닦고 자신의 지혜로 마음의 본체를 깨달은 것뿐이어서 자기를 위한 수행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닌데 어찌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까?"공자(孔子) 왈(曰)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 삼는다."
*새옹지마 / 塞翁之馬 : 塞 변방 새, 翁 늙은이 옹, 之 갈 지, 馬 말 마
겉뜻 :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라는 뜻
속뜻 : ①세상만사는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가 되고,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재앙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
②인생의 길흉화복은 늘 바뀌어 변화가 많음을 이르는 말
유래 :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며 불안해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 젊은이들은 싸움터로 불려 나가 대부분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진 후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계란유골 / 鷄卵有骨 : 鷄 닭 계, 卵 알 란(난), 有 있을 유, 骨 뼈 골
겉뜻 :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속뜻 : 복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만나도 덕을 못 본다는 말
유래 : 조선(朝鮮) 초기에 대신 黃喜(황희)가 집이 가난하므로 임금의 명령으로 하루 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상품은 모두 황희의 집으로 보내라 했으나, 이 날은 종일 비가 와서 아무 것도 들어오는 물건이 없다가 저녁 때 달걀 한 꾸러미가 들어왔는데, 달걀을 삶아 놓고 보니 모두 곯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는 데서 나온 말. 곯았다는 '곯'음과 骨(골)의 음이 비슷하므로 와전되어 계란유골이란 말로 바뀜
*함흥차사 / 咸興差使 : 咸 다 함, 興 일 흥, 差 다를 차, 使 하여금 사
겉뜻 : 함흥으로 간 심부름꾼
속뜻 : 심부름꾼이 가서 소식이 없거나, 또는 회답(回答)이 더딜 때의 비유
유래 : 이조 초 함흥으로 간 태조를 모셔 오기 위해서 보낸 使臣(사신). 1398년 (태조 7) 세자 芳碩(방석)이 왕자의 亂(난)으로 죽은 뒤 태조는 정치에 뜻이 없어 王位(왕위)를 定宗(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갔다. 태종이 즉위하여 성석린(成石璘)을 보내어 일단 서울로 돌아왔으나, 1402년(태종 2)에 다시 北東(북동) 방면으로 간 채 돌아오지 않으므로 왕이 差使(차사)를 보냈으나 차사도 돌아오지 않아 이 때부터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함흥차사'라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차사를 모두 태조가 죽인 것이라 하나 문헌에는 朴淳(박순)의 희생만이 알려져 있고 그 후 여러 차례의 간청에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師父(사부) 無學大師(무학대사)가 가서 겨우 서울로 오게 하였다.
*타산지석 / 他山之石 : 他 다를 타, 山 뫼 산, 之 갈 지, 石 돌 석
겉뜻 : 다른 산의 돌이라는 뜻속뜻 :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 수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自己)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이 말은 '『시경(詩經)』, 소아편 학명(鶴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의 한 구절이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 (樂彼之園 낙피지원)) 박달나무 심겨 있고(爰有樹檀 원유수단)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其下維穀 기하유곡) 다른 산의 돌이라도 (他山之石 타산지석)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 (可以攻玉 가이공옥) 돌을 소인에 비유하고 옥을 군자에 비유하여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다다익선 / 多多益善 : 多 많을 다, 多 많을 다, 益 더할 익, 善 착할 선
겉뜻 :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속뜻 : 많이 보태지면 힘이 더 난다.
유래 : 漢(한)나라 유방(劉邦)이 천하통일 후 한신(韓信)을 楚(초)왕으로 임명하고, 한신에게「임금이 묻기를 "나는 얼마쯤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느냐? " 한신이 대 답하기를 "폐하께서는 10만의 군사를 거느리는 데에 불과합니다." 임금이 가로되 "그대는 얼마쯤인가?" 한신이 대답하기를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 <上問曰(상문왈) 如我能將幾何(여아능장기하)오하니 信曰(신왈) 陛下不過能將十萬(폐하불과능장십만)이니다. 上曰(상왈) 於君何如(어군하여)오 曰(왈) 臣多多益善耳(신다다익선이)니이다.>」 유방이 웃으면서"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사람이 어째서 10만의 장군에 불과한 나에게 포로가 되었느냐?"하니 한신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장군의 능력은 없지만 장군을 통솔하는 폐하의 능력은 하늘이 주신 것이므로 도저히 사람의 능력으로는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정성시 / 門前成市 : 門 문 문, 前 앞 전, 成 이룰 성, 市 저자 시
겉뜻 : 대문(大門)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
속뜻 : 세도가(勢道家)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市)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
유래 : 漢(한)나라 애제(哀帝)는 약관(弱冠)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외척이 정권을 쥐고 있어 꼭두각시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정숭(鄭崇)이라는 어진 신하(臣下)가 있었다. 처음엔 정숭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외척들의 저항이 점점 거세 지자 귀찮아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 그 틈에 간신들이 기회를 잡고 그를 모함 하니,「임금이 정숭을 꾸짖기를 그대의 집은 시장과 같다고 하니 어찌하여 짐(朕)과의 관계(關係)를 금하여 깨려 하는가? 하니 정숭이 대답(對答)하여 말하기를 신의 집은 시장과 같으나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上責崇曰(상책숭왈) 君門如市(군문여시)이라하니 何(하) 以欲禁切主上(이욕금절주상)이리오하니 崇對曰(숭대왈) 臣門如市(신문여시)이나 臣心如水(신심여수)이니다.>」라고 대답(對答)했 다. 그러나 애제는 정숭의 말을 믿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 결국 옥사하고 말았다.
*괄목상대 / 刮目相對 : 刮 긁을 괄, 目 눈 목, 相 서로 상, 對 대할 대
겉뜻 :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對)한다는 뜻속뜻 :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말함
유래 : 삼국(三國)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당시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 중에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졸병에서 전쟁의 공으로 장군까지 된 여몽이었으나 무식했다. 그러나 손권은 그가 이론적인 병법까지 알기를 원해서 학문(學問)을 깨우치도록 충고를 했다. 이때부터 그는 전장(戰場)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했다. 얼마 후 뛰어난 학식을 가진 노숙이 여몽과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갔다. 노숙은 여몽과 막역한 친구(親舊)여서 여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면서 "이 사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이제 오나라 있을 때 여몽이 아닐세..."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네."라고 했다.
*군계일학 / 群鷄一鶴 : 君 무리 군, 鷄 닭 계, 一 한 일, 鶴 학 학
겉뜻 :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속뜻 : 여러 평범 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의 비유.
유래 :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瑞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 유령(劉伶), 상수(尙秀) 곧 죽림 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 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동부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다. 그런데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위(魏)의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瑞康) 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되는 아들 혜소(瑞紹:? ∼304)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당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이부(吏部)에서 벼슬하던 산도(山濤)가 무제(武帝:256∼290,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 司馬炎)에게 상주(常住)하였다. "폐하, 서경(書經)의 강고편(康誥篇)에는 아비의 죄는 아들에게 미치지 않으며 아들의 죄는 그 아비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혜강은 도륙 당했음).
비록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나 그 슬기나 지혜는 춘추시대 진(晉) 나라의 대부 극결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비書郞)으로 기용 하시오소서." "그대가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면 승(丞)을 시켜도 좋을 듯하오." 이렇게 말하면서 무제는 비서랑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인 비서승(秘書丞)으로 혜소를 등용했다. 혜소가 처음으로 낙양(洛陽)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 (王戎)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저께 많은 혼잡한 군중 속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의 드높은 혈기와 기개는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群鷄一鶴]'과 같더군요." 이 말을 듣고 왕융은 대답했다. "그대는 혜소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는 혜소보다 훨씬 더 늠름했다네."
*대기만성 / 大器晩成 : 大 큰 대, 器 그릇 기, 晩 늦을 만, 成 이룰 성
겉뜻 ; 큰 그릇은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
속뜻 ;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유래 ;《노자(老子)》 41장에서 나온 말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 옛글을 인용하여 도(道)를 설명하였는데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것 같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것 같다. 몹시 흰 빛은 검은 것 같고, 매우 넓은 덕은 한쪽이 이지러진 것 같다. 아주 건실한 도는 빈약한 것 같고, 매우 질박한 도는 어리석은 것 같다.”라고 말하였다.
또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大方無隅),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大器晩成).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大音希聲),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象無形). 왜냐하면 도는 항상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이라고 긍정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보듯 만성(晩成)이란 본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로,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 강하다. 그런데 후일 이 말이 늦게 이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비롯된 듯하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이름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는 최림(崔林)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외모도 빈약하고 출세가 늦어 친척들로부터 멸시를 당하였다. 하지만 최염만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큰 종이나 큰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성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형이다.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틀림없이 네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최림은 후일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나이 들어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백전백승 / 百戰百勝 : 百 일백 백, 戰 싸울 전, 百 일백 백, 勝 이길 승
겉뜻 :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
속뜻 :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말.
유래 :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서 오왕(吳王) 합려(闔閭:B.C. 514∼ 496)를 섬긴 병법가 손자(孫子:孫武)가 쓴 "손자"〈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승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서 얻는 승리와 적을 공격한 끝에 얻는 승리인데 전자는 최상책(最上策)이고 후자는 차선책(次善策)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百戰百勝]'해도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 곧, 최상책은 적이 꾀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상책은 적의 동맹 관계를 끊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적과 싸우는 것이며, 최하책은 모든 수단을 다 쓴 끝에 강행하는 공성(攻城)이다.
*계명구도 / 鷄鳴狗盜 : 鷄 닭 계, 鳴 울 명, 狗 개 구, 盜 도둑 도
겉뜻 :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하다.
*양상군자 / 梁上君子 : 梁 대들보 양, 上 위 상, 君 임금 군, 子 아들 자
겉뜻 ;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
속뜻 ; 도둑을 가리키는 말.
유래 ;《후한서(後漢書)》〈진식전(陳寔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식은 학식이 뛰어나고 성질이 온화하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태구현(太丘縣)의 현감으로 있을 때 어느날 밤 도둑이 그의 방으로 들어와 천장 들보 위에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진식은 곧 의관을 정제하고 아들과 손자들을 불러들여 훈계를 시작하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도둑은 이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들보 위에서 뛰어내려와 이마를 조아리며 죽여 주십사하고 사죄하였다. 진식은 그를 조용히 타이르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고을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한다.
*내우외환 / 內憂外患 : 內 안 내, 憂 근심 우, 外 바깥 외, 患 근심 환
겉뜻 : 안의 근심과 밖의 재난.속뜻 ; 근심·걱정 속에 사는 것을 뜻함
유래 : 송(宋)나라에 환원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다. 그는 지성을 다해 진(晉)과 초(楚)를 설득하여 기원전 579년에 송나라의 서문 밖에서 양국의 대표자가 맹약을 조인케 하였다. 그 맹약의 주된 내용은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환란이 있을 때엔 서로 도우며 복종하지 않은 나라가 있을 때에는 두 나라가 연합하여 공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남북을 대표하는 두 나라가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천하의 소란을 가라앉히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맹약이 깨어진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맹약은 깨어지고 이듬해인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낙서(樂書)라는 이는 진나라에 항거하는 정나라를 치기 위해 동원령을 내렸었다. 이때 초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하자 범문자가 반대했다. "제후로 있는 자가 반란하면 이를 토벌하여야 함이 마땅한 것이지 그를 돕게 되면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이요." 낙서가 말했다. "성인이라면 밖으로의 재난을 견딜 수 있겠지만, 우리는 밖으로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 우환이 있을 것이요. 그러니 그것을 어찌 견디겠소."
*과유불급 / 過猶不及 : 過 지날 과, 猶 오히려 유,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
겉뜻 :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유래 : 子貢(자공)이 공자(孔子)에게 "子張(자장)과 子夏(자하) 중, 누가 현명합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자장이 공자(孔子)에게 "士(사)로서 어떻게 하면 達(달)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孔子)는 도리어 자장에게 반문하기를 "그대가 말하는 達(달)이란 무엇인가?" "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경대부(卿大夫)의 신하(臣下)가 되어도 또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聞(문)이지 達(달)이 아니다. 본성이 곧아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여 남에게 겸손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臣下)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達(달)이라 할 수 있다." 하고 공자(孔子)는 자장의 허영심을 은근히 나무랐다. 한편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다.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군자유란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 소인유란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달라는 자공의 말에 "자장은 지나쳤고, 자하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過猶不及;과유불급)."
*어부지리 / 漁夫之利 : 漁 고기잡을 어, 夫 지아비 부, 之 갈 지, 利 이할 리
겉뜻 :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속뜻 :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
유래 :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는 여러 나라를 병탐하여 천하를 제압하려고 하였다. 이때 조(趙)나라와 연(燕)나라 사이에 마찰이 생겨 조나라는 연나라를 침략하고자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은 소대(蘇代)를 조나라에 보내어 혜왕을 설득하도록 했다. 조나라에 도착한 소대는 한 가지 예를 들어 혜왕(惠王)을 설득했다. "제가 이 나라에 들어올 때, 역수(易水)를 지나다가 우연히 냇가를 보니 조개가 입을 벌리고 볕을 쬐고 있었는데, 황새 한 마리가 날아와 조개를 쪼자, 조개는 급히 입을 꽉다물어 버렸습니다. 다급해진 황새가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목이 말라죽을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지 않고 꽉 물고 있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걸.'하였습니다. 이렇게 한참 다투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부가 이를 보고 힘들이지 않고 둘 다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왕은 지금 연나라를 치려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황새입니다. 지금 연나라와 조나라가 공연히 싸워 국력을 소모하면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조나라 혜문왕(惠王)도 현명한 까닭에 소대의 말을 알아듣고 연나라를 치려던 계획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목불식정 / 目不識丁 : 目 눈 목, 不 아닐 불, 識 알 식, 丁 고무래 정
겉뜻 : 고무래를 보고도 그것이 고무래 정(丁)자인 줄 모른다는 뜻속뜻 : 글자를 전혀 모름, 또는 그러한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唐나라 때 장홍정(張弘靖)이란 사람은 못나고 무식하며 행동 또한 오만 불손(傲慢不遜)하였다. 그러나 부친인 장연상(張延賞)이 조정에 끼친 공적이 많아 그 덕분으로 그의 벼슬길은 매우 순탄하였다. 그가 노룡(盧龍)의 절도사(節度使)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부하들과 어려운 병영생활을 하려 않고 가마를 타고 즐기며 군사들을 괴롭히고 교만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부하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니 오히려「천하가 무사한데 무리들이 포와 활을 당기는 것은 '丁'자 하 나를 아는 것만 같지 못하다. <天下(천하)가 無事(무사)한대 而輩挽石弓(이배만석궁)은 不如識一丁字(불여식일정자)라.>」라고 꾸짖었다.
*조삼모사 / 朝三暮四 : 朝 아침 조, 三 석 삼, 暮 저물 모, 四 넉 사
겉뜻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
속뜻 : ①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차별만을 알고 그 결과가 같음을 모름의 비유
②간사한 꾀를 써서 남을 속임을 이르는 말
유래 : 宋나라 때 저공(猪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사랑하여 이를 길러 여러 마리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저공이 능히 원숭이의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 주더니 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다. 앞으로 그 먹이를 줄이고자 하나 여러 원숭이가 앞으로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먼저 이를 속이어 말했다.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러 원숭이가 다 일어나서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했다.
*조변석개 / 朝變夕改 : 朝 아침 조, 變 변할 변, 夕 저녁 석, 改 고칠 개
겉뜻 : 아침, 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뜻속뜻 : 계획이나 결정 따위를 자주 바꾸는 것을 이름
유래 : 한번 세운 계획이나 정해진 결정 따위를 일관성이 없이 자주 고치는 것을 말하는 고사성어로 조석변개, 조개모변이라고도 한다. 아침에 바꾼 것을 저녁에 다시 또 고친다는 뜻으로 규칙이나 계획이 너무 자주 바뀔 때 쓰는 말이다. 이익집단이나 개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 나라의 정책(政策) 또는 법령(法令)이 자주 바뀌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성질이나 태도뿐만 아니라 어떤 명령이나 계획 및 결정을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일정하게 정해놓은 때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자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또다시 고친다는 뜻으로 쓰여 법률이나 명령이 자주 뒤바뀌어 일관성이 없는 것을 나타내는 조령모개(朝令暮改)와 비슷한 말이다.
*조령모개 / 朝令暮改 : 朝 아침 조, 令 하여금 령, 暮 저물 모, 改 고칠 개
겉뜻 :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속뜻 : ①법령의 개정이 너무 빈번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
②아침에 조세를 부과하고 저녁에 걷어들임을 이르는 말
유래 :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받는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조(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조가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 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 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조령모개'는 '법령에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淸)나라 때의 학자 왕염손(王念孫)은 후한(後漢) 때의 순열(荀悅)이 《한기(漢紀)》에 기록한 대로, '조령이모득(朝令而暮得)’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하였다. '조령모득'은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 저녁에 거둔다'는 뜻이다.
*오합지졸 / 烏合之卒 : 烏 까마귀 오, 合 합할 합, 之 갈 지, 卒 마칠 졸
겉뜻 : 까마귀가 모인 것 같은 무리라는 뜻
속뜻 : 질서 없이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군중 또는 제각기 보잘것없는 수많은 사람
유래 :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잦은 정변과 실정(失政)으로 말미암아 각지에 도둑떼가 들끓었다.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 후한(後漢)의 시조(始祖).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 일당을 주? 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擁立)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稱)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龕)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들어 갔다. 그때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가 있었다.“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耿龕)은 두 사람을 끌어낸 뒤 칼을 빼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陝西省 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졸(烏合之卒)’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事理)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耿龕)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耿龕)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 되었다. 우리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써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치는 것은 썩은 고목을 꺾고 썩은 것을 깎음과 같을 뿐이다.
*노마지지 / 老馬之智 : 老 늙을 노(로), 馬 말 마, 之 갈 지, 智 슬기 지
겉뜻 :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속뜻 : ①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음
②저마다 한가지 재주는 지녔다는 말
유럐 :「관중과 습붕이 환공을 따라 고죽국을 칠 때 봄에 가서 겨울에 돌아오다가 미혹되어 길을 잃었다. 관중이 가로되"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만하다" 하고 곧 늙은 말을 풀어 그 말을 따랐다. <管中濕朋(관중습붕)이 從於桓公(종어환공)하여 而伐孤竹(이벌고죽)할 새 春往冬反(춘왕동반)이라가 迷惑失道(미혹실도)하다. 管中曰(관중왈) 老馬之智(노마지지)를 可用也(가용야)라하고 乃放老馬(내방노마)하여 而隨之(이수지)하다.>」 또한 산중을 진군하고 있을 때 물이 없어 갈증이 나자 습붕이"개미는 겨울이면 남쪽에 살고 여름이면 산의 북쪽에 사는 것이므로 개미집의 높이가 한 치라면 그 지하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고 말하여 파보니 과연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미물도 뛰어난 장점이 있듯이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뛰어난 점이 있어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여 할 일을 부여한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연목구어 / 緣木求魚 : 緣 인연 연, 木 나무 목,求 구할 구, 魚 고기 어
겉뜻 : 나무에 인연하여 물고기를 구한다라는 뜻속뜻 : 목적이나 수단이 일치하지 않아 성공이 불가능함,
또는 허술한 계책(計策)으로 큰 일을 도모함
유래 : 齊(제)나라 선왕(宣王)이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욕심을 품고 있어 맹자한테 춘추시대 패자였던 제나라 환공과 진(秦)나라 문공의 사적을 물었다. 맹자는 패도(覇道)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한 다음 "폐하는 전쟁을 일으켜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고 싶습니까?" 라고 물었다. 왕은 빙그레 웃으며 그렇지 않으나 장차 큰 뜻을 실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맹자가 큰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으나 왕이 우물우물 대답을 않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큰 뜻이란 영통를 확장하여 진(秦)나라나 초(楚)나라 같은 나라로부터 문안을 받고 사방의 오랑캐를 어루만지고 싶은 것이겠죠. 하지만 그것은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하는(緣木求魚) 것과 같습니다.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실패해도 탈이 없지만 폐하처럼 무력으로 뜻을 이루려면 백성을 잃고 나라를 망치는 재난이 따라 올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 하듯이 통일천하를 하고 싶으면 왕천하(王天下)의 대도를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