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 윤봉길 의사 사적지
매헌 윤봉길(1908-1932년)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항공과 모친 김원상 여사 사이에
5남 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1세 때 덕산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그 이듬해 일제의 식민지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자퇴하였으며,
19세 때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애국운동이라하여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져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1930년 23세 때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25세 때인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개최한 일제의 천장절겸
전승기념 축하식장을 폭파하는 거사에 성공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그해 5월 25일 상해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동년 11월 18일 일본 대판
위술형무소에 이감되었다가 한달 뒤인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그후 13년이 지난 1945년 해방이 되고 광복회 회장이셨던 이강훈 선생이 1946년
일본으로 건너가 윤의사의 유해를 모셔다가 서울 효창공원에 국민장으로 안장하였다.
윤봉길 의사 사적지는 1968년 사당이 처음 창건되고,
(고)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준공식겸 의거 기념행사를 거행하였으며,
1972년 사적 제229호 및 보물 568호로 지정 받아 수차의 정화 사업을 거쳐
현 사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충의사 홍살문
충의문(忠義門), 충의사로 들어 가는 문
충의사(忠義祠), 윤봉길 의사 영정을 모신 사당
매헌 윤봉길 의사 사적비
윤봉길 의사 기념관
어록탑
보부상유물 전시관
국내 유일한 부보상 유품 25점(중요 민속 자료 제30호)을 전시하고 디오라마로 그시대의 부보상 장면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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