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및 기념관
독립운동가 김좌진(1889∼1930) 장군은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나
개화사상이 투철하여 15세 때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나누어 주었다.
1905년 홍성에서 호명학교를 설립하였고, 1915년 광복 사건으로 3년간 옥살이를 했으며
청년학우회 회원, 한성일보 이사로 있다가 3. 1운동 때 만주로 건너가 북로 군정서를 조직,
총사령이 되었다. 1920년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청산리 싸움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하고, 1925년 김혁과 함께 신민부를 조직,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1930년 한족 총연합회를 조직, 주석에 취임하여 독립운동에 힘쓰던 중
공산청년당원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했다.
장군의 아들은 일제강점기 조선주먹의 황제로 군림하고 해방 후
제6대 한국독립당 용산구 국회의원을 지낸 김두한이며,
현재 배우이자 친박연대 국회의원 김을동씨가 손녀이다.
백야 김좌진 장군 어록비 "단장지통"
김좌진 장군 생가(충남 기념물 제76호)
사랑채에는 안채로 들어 가는 대문이 같이 붙어 있다.
대문에 걸려 있는 문패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
안채는 앞면 8칸·옆면 3칸의 기와집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2칸 부엌이 있고 아랫방과 윗방 각 한 칸씩 있으며,
통칸의 대청이 있다. 그 위에 방이 한 칸 있고 끝으로 툇마루가 있다.
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는데, 맨 끝방 주위에는
툇마루를 한 칸 높여 누각처럼 만들었다.
안채 대청마루에 걸려 있는 "청백전가팔백년"
"백야 김좌진장군 생가유지"라고 쓰여있다.
헛장독대, 살림을 하지 않으니 빈 장독들이 거꾸로 놓여 있다.
안채 마당의 화단...
사랑채 오른쪽에 있는 마굿간과 통시(화장실)
생가 전경
관리사무소
백야기념관
기념관 내 김좌진장군 흉상
1920년 10월 21일~26일, 6일간의백운평,천수평,어랑촌 등에서
10여 차례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그 유명한 청산리 전투의 조감도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으로 활약하며 지은 詩
백야 김좌진장군 생가지 성역화기
김좌진장군 사당
백야사(白冶祠)
백야공원
김좌진장군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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