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영양군

조지훈의 주실마을

자즐보 2010. 10. 31. 22:15

 

 

 

 

 

영양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은

 

 

산골등짝이 서로 맞닿아 이루어진 마을,

또는 배 모양 같다고 하여 주실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정암 조광조가 개혁정치를 하다 기묘사화(1519) 때 축출당하자

 

한양에 있던 일족이 화를 피하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후에 조광조의 후손 호은공 조전(趙佺)이 1629년 입향하여 세운 마을이

 

바로 한양조씨의 집성촌인 주실마을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력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지조 있는 마을이며, 

 1928년부터 80년 넘게 양력설을 쇠고 있는 마을로 유명하단다...

 

 주실마을 입구는 숲으로 싸여 있다.

 

장승을 뜻하는 사투리를 섞어 ‘수구막이 숲’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마을 숲은

 

영양에서 봉화 가는 길가에 있다. 길가에 있으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수백년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모여 있다.

 

마을입구에 늘어선 나무들은 마을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숲을 지켜주며 더불어 살며

 

 꾸준히 공존한 결과  2008년 제9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호은종택"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근대 대표적 시인인

 

지훈(芝熏) 조동탁(趙東卓,1920~1968)이 태어난 곳이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3년 복원,,,

 

 

호은종택의 독특한 가풍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삼불차(三不借) 정신,

세가지를 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첫째,재불차(財不借) 재물을 빌리지 않는다.

둘째,문불차(文不借) 학문을 빌리지 않는다. 남의 학문을 도용하지 않는 것 

셋째,인불차(人不借)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 즉 양자를 들이지 않는 것....

 

 

이러한 삼불차 정신은 지조와 절개를 중시하며

지조론을 펼쳤던 지훈선생의 정신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시각이다. 

 

 

 

 

호은종택 뒷산쪽에 있는 "지훈 시 공원" 

 

 

 

 

 

 

 

 

낙화(落花)

 

 

파초우(芭焦雨)

 

외로이 흘러간 한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초잎에 후둑이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주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현대의 도시인들이 상실한 자연과의

친화적 관계를 관조적방식으로 드러낸 작품,,,

 

 

 

승무(僧舞)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의 동작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는 시. 

‘하이얀’, ‘나빌레라’, ‘파르라니’ 등의 표현들은

외국어와는 달리 우리말의 표현의 다양성과 섬세함을 알 수 있다.

 

이 詩에서 여인은 번뇌를 지우기위해 승무를 하고 있는데

경건하면서 슬프고 아름답다.

 

 

 

봉황수(鳳凰愁)

 

벌레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이 시는 퇴락(頹落)한 고궁의 옥좌 앞에서 몰락한 왕조와 국권의 상실을 회고하면서

비극적인 역사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산문시이다. 역사에 대한 감회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구체적이면서 평범한 시어를 적절히 이용하여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으며,

시인의 역사 의식과 조국애가 낭만적 정조를 바탕으로 드러나 있다...

 

 

 

지훈문학관 

 

 

 400년의  전통마을이다...

한옥집이 즐비한 마을 뒤쪽에 우뚝 솟아 있는 흰콘크리트 덩어리가 뭘꼬???

수곡교회란다, 어느 교회건물의 대가라는 분이 기하학적으로 만들었따나...

억쑤로 보기 싫타, 누구나 눈에 가시라는 말을 할만 하다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