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동 팔 경
* 월영교(月 影 橋)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해 월영교라고 명명했다.
먼저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미투리를 삼았던 지어미의 애절하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해
한 컬레의 미투리 모양을 형상화 하여 만든 다리...
1.선어모범(仙漁暮帆) 2.귀래조운(歸來朝雲)
3.서악만종(西岳晩鐘) 4.임청고탑(臨淸古塔)
5.학가귀운(鶴駕歸雲) 6.연미세우(燕尾細雨)
7.도산명월(陶山明月) 8.하회청풍(河回淸風)
안동 고산서원(高山書院 : 안동시 南後面 소재)에 소장된
와혈(窩穴)이라는 책에 安東八景歌라는 한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누가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산(大山) 이상정(1710-1781) 선생이 지었다고도 한다.
안동팔경가
歸來亭上白雲遊 귀래정 위에는 흰구름 노니는데
西岳寺樓前日樂 서악사 누 위에서 즐거웠던 지난날
臨淸閣軒古時愁 임청각 마루에서 옛시름 겨워하네
鶴駕山影照三郡 학가산 그늘은 세 고을에 드리우고
燕尾園名傳萬秋 연미원 이름은 만세에 이어지니
西厓祠前松竹綠 하회마을 앞에는 송죽이 푸르고
退溪門下洛江流 도산서원 아래는 낙동강이 흐르누나
옛날 선어대 모습
현재는 다리가 건설되고 있는 선어대
선어대는 안동시에서 영덕방면으로 국도 34번을 따라 마뜰을 지나 용상이 끝나는 지점 우측 강나루에 있다.
도연을스쳐 흐르는 반변천이 이곳에 와서 무협산(巫峽山)의 절벽을 드리받고 용솟음치는 물살로 움푹 패인
깊은 소(沼)가 바로 선어연이다. 여기를 일러 사람들은 선어대(仙漁臺)라고 부르고 있다.
이 곳은 옛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안동팔경의 하나로 ‘선어모범(仙漁暮帆)’
또는 ‘선어대하은어비(仙漁臺下銀魚肥)’라 하였고,
날이 가물 때에 여기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영험(靈驗)이 있는 곳이다.
1960년의 귀래정
현재의 귀래정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귀래정은 고성 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 선생의
둘째 아들인 낙포 이굉 선생이 지은 정자이다.
이굉 선생은 사헌부 지평, 상주목사, 개성유수 등의 직을 지내던 중,
갑자사화에 연루되어삭탈관직되었다가 중종반정 때 다시 기용되었으나,
연로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건너편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처지가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너무나 흡사해서
정자 이름을 "귀래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3경> 서악만종(西岳晩鐘) / 서악사의 저녁 종소리
안동시 태화동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서악사는
원통전, 요사채의 2건물로 된 사찰로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옛 안동부에는 사악(四嶽)이 있었는데,
그 중 서악에 지은 절이 바로 서악사이다.
사악은 동의 동악사, 서의 서악사,
남의 남산 순천사, 북의 금학산 수정사 등이다.
임청각은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 이씨의 대종택 이다.
세칭 99칸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었다.
일제시대 철도 부설 때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건물을
철거당하고도 이런 규모를 보여주는 99칸 집이었다.
조선 세종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1368∼1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 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싯구에서 ‘
임(臨)자’와 ‘청(淸)자’를 취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
영호루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물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고,
임청각 앞의 7층전탑은 국보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학가산 일출
학가산은 경북 안동시 북후면과 서후면,
예천군 보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870m이다.
각 지방에서 보이는 모양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하는데,
안동에서는 울퉁불퉁하게 보인다고 '문필봉'
영주에서는 평평하게 보여 '노적봉'
예천에서는 모습이 수려하다 해서 '인물봉'이라 한다.
이 산의 남쪽면에는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蒙塵)하여
쌓은 것이라는 학가산성이 남아 있다.
안동시 이천동 제비원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로,
정식 명칭은 [안동이천동마애불입상]이며,
보물 제 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옛 연미사(燕尾寺, 속칭 제비원) 터로 전하는 곳의 서향한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몸체는 넓은 천연암벽에 새기고, 머리는 다른 돌로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11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머리의 뒤쪽은 파손되었으나 앞쪽은 온전하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력하였다.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년),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이듬해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하사받은
사액(賜額) 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회마을 전경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하회마을 설경
예로부터 유림의 고장이었던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 동족 부락으로,
국보를 비롯해 보물, 중요민속자료, 중요무형문화재 등
값진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1984년 1월 민속보존마을로 지정되었다.
동쪽은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321m)이 감싸고 있으며,
낙동강이 서·남·북 경계를 따라 마을 전체를 태극형으로 감싸 흐른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을 이루는
길지(吉地)로 임진왜란 때는 전화를 입지 않은 곳으로 알려졌다.
서북쪽으로는 울창한 노송림대가 있으며,
마을 중앙에는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삼신당나무로 삼고 있다.
강 건너의 부용대는 천연의 병풍과 같은 형태를 자아내며,
이 일대는 백사청송이 어울려 경승을 이룬다.
과거 신분제 사회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300~500년 된 130여 호의
유서깊은 대·소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유운룡의 종택인 안동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서애 유성룡을 모신 종가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을 비롯해 하회북촌택, 하회원지정사
하회빈영정사,하회유시주가옥,하회옥연정사,하회겸암정사
하회남촌택,하회주일재 등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이곳의 오랜 민간전승놀이로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와
강상유화(江上流花) 놀이인 줄불놀이가 있으며,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쓰이던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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