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영천시

도잠서원(道岑書院)

자즐보 2016. 4. 17. 09:40

 

 

도잠서원(道岑書院)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140 소재 / 경북 무화재자료 제100호

 

1612년(광해군 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호익(曺好益)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재(書齋) 뒤에 묘우(廟宇)를 건립하여 배향해오다가,

이듬해에 조호익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봉서원(芝峰書院)이라 하였다.

 

1678년(숙종 4)에 ‘도잠’이라고 명하고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나 1914년 복원되었으며, 1981년 정부 지원으로 중수하였다.

(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잠서원 강당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2칸의 마루를 두고

오른쪽에 1칸 방, 왼쪽에 두칸 방을 꾸몄다.

 

 

 망회정(忘懷亭) 

1603년(선조 36)에 조호익이 건립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신도비,1642년(인조 20)에 건립

 

 

 

 

조호익(曺好益, 1545~1609)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 창원 출생. 사옹원정 치우(致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정랑 효연(孝淵)이고, 아버지는 증좌참찬 윤신(允愼)이다. 어머니는 인동 장씨(仁同張氏)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중우(仲羽)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75(선조 8) 경상도도사 최황(崔滉)이 부임하여 군적(軍籍)을 정리할 때 그를 검독(檢督)에 임명, 한정(閑丁) 50명을 독납(督納)하게 하였다. 그러나 병을 핑계로 거절하자 토호(土豪)라고 상주(上奏)하여 다음해 평안도 강동현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계속 학문에 정진, 많은 후진을 양성하여 관서 지방에 학풍을 진작시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유성룡(柳成龍)의 청으로 풀려나와 금오랑(金吾郎)에 특별 임명되어 행재소(行在所)가 있는 중화로 달려갔다. 그 뒤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군민(軍民)을 규합, 중화·상원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녹비(鹿皮)를 하사받았다. 이어 형조정랑·절충장군(折衝將軍)에 승진되고, 1593년 평양싸움에 참가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그 뒤 대구부사·성주목사·안주목사·성천부사 등을 역임하고, 1597년 정주목사가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1604년 선산부사, 1606년 남원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나가지 못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영천(永川)의 지봉서원(芝峰書院)과 도잠서원(道岑書院), 성천의 학령서원(鶴翎書院), 강동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되었다.

 

 

 

관서부자(關西夫子)

 

 

 

지수문(止水門)

 

 

 

 

 

 

희안재(希顔齋)

 

 

봉원재(逢原齋)

 

 

 

 

도화담(桃花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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