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풍천면

선원강당 & 화산신도비

자즐보 2013. 5. 24. 16:20

 

 

선원강당(仙原講堂)

 

화산 권주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강당이다.

권주(1457∼1505)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성종 11년(1480)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라 도승지 등 많은 벼슬자리를 거쳤으며, 중국어에 능통하여

대명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가 죽은 뒤인 중종 1년(1506)에는 나라에서

우참찬의 직함을 내리기도 했다. 이 강당은 후손들이 지은 것이나,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조선 헌종 9년(1843)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정면 4칸의 선원강당, 가운데 2칸 대청을 두고 좌 ·우로 1칸씩의 방을 두었다.

 

 

 

안에서 본 대문채, 왼쪽이 방 오른쪽이 누마루...

 

 

 

 

 

 

 

화산신도비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화산 권주(1457∼1505) 선생을 기리고 있다.

 

화산은 세조 3년(1457)에 태어나, 2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성종 20년(1489)에는 공조정랑으로 있으면서 질정관이 되어 요동지역을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성종 24년(1493) 12월에서 이듬해 8월까지는 경차관이 되어 대마도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연산군 3년(1497)에는 도승지에까지 이르렀으며, 1499년에는『성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예전에 그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받들고 갔다는 이유로 파직되었고, 이 후에도 이 일로 죄를 추궁당하여

연산군 11년(1505) 사약을 받고 생을 마쳤다. 중국어에도 능하여 명나라와의 외교활동에서도

중요한 일을 맡아하였고, 성품도 검소하고 단아하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였던 이라고 한다.

비는 낮고 넓적한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숙종 37년(1711)에 세웠다. 비문은 이조판서를 지냈던 이현일이 글을 짓고,

이유의 글씨로 하여 새겨놓았다. 1981년 새로이 비각을 지어 비를 보호하고 있다.

 

 

 

 

'웅부안동(雄府安東) > 풍천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곡리 동곡재사(東谷齋舍)  (0) 2013.05.24
근와서재(根窩書齋)  (0) 2013.05.24
노동서사(魯東書社)  (0) 2013.05.24
야유당(野遺堂)  (0) 2013.05.24
시습제(時習齊)  (0) 201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