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곡고택(樹谷古宅)
권조가 할아버지 권보의 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지은 종가집이다.
50여 호 되는 작은 마을 북쪽에 야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권보는 일생동안 검소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본채의 사랑채 지붕을
화려한 팔작지붕이 아닌 맞배지붕으로 한 것도 그의 소박함을 기리기 위함이다.
남향한 터에 'ㄷ'자형 안채, '一'자형 사랑채와 중문간채, '一'자형 별당,
'一'자형 대문간채가 있다. 행랑채의 오른쪽 칸에 있는 문을 들어서면
넓은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와 안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의 뒷쪽 높은 곳에는 1칸의 사당이 있다. 별당채는 집터의 서쪽으로
안채와 대문간채 사이에 있는 건물로 새로 지은 사랑채라 해서
'새사랑채' 또는 ‘일지재’라 하기도 한다. 이곳은 학문연구와 제자를
키우기 위해 만든 곳이다. 전반적으로 볼때, 안채와 사랑채, 중문간채와 별당채
그리고 대문간채가 두루 갖추어진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양반집이다.
수곡 권보는 안동의 풍천면 가곡리에서 태어났다.
영조 4년(1782), 이인좌의 난 때 아버지 권구가 연루되어 서울로 압송되는 일을 겪었다.
그 뒤로 권보는 과거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형들과 함께 두문불출하며 심신을 수련하고
학문을 연마하는데 전념하였다. 선비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학문을 닦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맹자를 가장 열심히 공부했으며, 조선의 역사와 지리에도
정통해서 경전과 역사서를 두루 섭렵하고, 천문과 수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깊이가 넓고 깊었다고 한다.
문화재지정 당시 명칭은 '가일 수곡종택'이었으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0호 '안동 시습재'가 실제종택이나, 작은집인 가일 수곡종택'이 큰집으로
잘못 기재되어 있으므로 '가일 수곡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28)을 하였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은 평범한 대문채
사랑채
안채로 출입하는 중문채
안채 뒤에 위치한 사당
안채와 담을 사이에 두고 새사랑채인 별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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