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대구 달성군

대구 달성공원

자즐보 2013. 4. 22. 15:46

 

 

 

 대구 달성공원(사적 제62호)

 

대구는 신라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 경덕왕(재위:742∼765)때에
이르러 비로소 대구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성의 옛이름은 이 달구화(達句火) 달불성 (達弗城)
에서 유래된 것이다. 달성은 경주의 월성(月城)처럼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특징이다. 달성은 청동기시대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들이
그들의 생활근거지에 쌓은 성곽(城廓) 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의 아래층에는 조개무지 유적이 있고 목책(木柵)의 흔적도 있다.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발달사상 가장 이른시기에 나타난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점해왕(沾解王)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 합병된 뒤에는 군사요지로 중시되었으며
그 후 고려 공양왕 2년(1390) 토성에 석축을 더했다. 조선 선조29년(1596)에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을 이곳에 둔 일이 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되었고
주위 길이는 약1,300m 높이는 4m 안팎이다.
 
달성공원은 도시근린공원으로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사적지와 동물원이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산 교육장으로 이용되며
희귀 거수목과 조경수가 조화되어 있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대신부 수운 최제우상

 

 

 

 

관풍루(觀風樓) 

 

 

 

 

 

 

물새장 

 

 

 

 

시계탑

 

 

 

 

 

 

서침(徐沈)나무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석재 서병오선생 예술비(石齋徐丙五先生藝術碑)
석재 서병오(1862∼1935)의 본관은 달성. 호는 석재(石齋). 영남출신으로

군수를 지냈으며, 대구에 살면서 영남일원의 대표적 서화가로 최대의 명성을 떨쳤다.

  

 

 

 

코끼리사 

 

 

 

 

원숭이사 

 

 

 

달성서씨유허비(達城徐氏遺墟碑)

 

 

 

 

석주 이상룡 구국기념비 

 

 

 

 

왕산 허위선생 순국기념비

 

 

 

 

 

달성공원 관리사무소 & 향토역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