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풍산읍

청성서원,연어헌,석문정사,귀래정 답사

자즐보 2011. 7. 2. 10:00

답사일:2011년 6월 6일

 

 

청성서원

청성서원은 송암 권호문(1532∼1587)을 추모하는 서원이다.

권호문은 조선 선조(재위 1567∼1608)때의 문인이며 학자로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덕망이 높아서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선조 41년(1608)에 세운 이 서원은 광해군 4년(1612)에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다가, 영조 43년(1767)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그 뒤 1909년 도내 유림들의 뜻에 따라 옛터에 복원하였다. 서원 안에는 강당,

동재·서재, 정도문, 청풍사, 전사청, 신문 등 모두 7동의 건물이 있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청성서원 전경

정도문을 가운데로 동재,서재,강당의 지붕이 보인다.

 

 

청성서원 강당

 

 

 

 

동재 

 

 

서재 

 

 

안쪽에서 본 정도문

 

 

동편에서 본 청성서원 전경

중문이 사당인 청풍사 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신문, 전사청, 사당인 청풍사 

 

 

 

연어헌 

조선시대 학자 송암 권호문(1532~1587)이 은신하여 살던 곳.

송암은 이 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명종16년(156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연이어 맞은 부모상 때문에 3년씩 여막을 지켜 벼슬에 나가는 것을 단념하고

청성산 기슭에 연어헌을 짖고 초연히 일생을 살았다.

 

 

 

 

 

 

 석문정사

조선 선조 20년(1587)에 학봉 김성일(1538∼1593)이 지은 정자이다.

김성일은 이곳 청성산 중턱에 정자를 짓고 칠백리 낙동강 맑은 물과 자연의 경관을 벗삼아

성리학 연구와 제자 양성에 노력하였다. 대유학자인 이황의 성리학을 계승하였으며,

선조 1년(1568)에 과거에 급제하여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귀래정

귀래정은 이 굉(1414∼1516)이 조선 중종 8년(1513)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으로 온 후 지은 정자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글의 뜻과 너무나 닮아

그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이 굉은 25세 때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권력 다툼에 말려들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이다. 

 

귀래정은 앞면 2칸·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마루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의 기둥은 각이 있고

창문에 쐐기 기둥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는 이현보·이 우·이 식·윤 훤 등

30여 명의 시를 보존하고 있다.

 

 

 

 

 

낙포 이 굉 신도비

 

 

▼  금개국이 활짝 핀 귀래정 앞

 

 

▼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시 보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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