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7일
천년고찰 신륵사(神勒寺)
오대산 줄기가 공작산, 우두산, 고달산을 내달아 남한강에서 꼬리를 적시듯
봉황의 형세로 내려앉은 봉미산(鳳尾山)의 아담한 산세를 벗 삼아 자리한
전통사찰 신륵사. 강원도, 충청도의 물길이 서로 잇닿아 스미고, 섞이고, 휘돌아치는
남한강변에 위치한 신륵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고려 우왕 2년(1376년)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해졌다.
조선 예종 원년에 세종대왕릉이 여주로 천장(遷葬)되면서 세종대왕의 극락왕생을 비는
원찰로서 보은사란 사액을 받기도 한 신륵사에는 조사당과 다층석탑, 다층전탑 등
국가 지정 보물 7점을 보유한 한국의 보물창고이자 문화 유적지다.
봉미산 신륵사일주문
강쪽은 황포나룻터로 복원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일주문 기둥의 글귀
삼일수심천재보=짧은 시간의 마음수양이라도 천년의 보배요
백년탐욕일조진=백년의 탐욕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로다.
신륵사 입구 매표소
신륵사 성보문화재 안내도
신륵사 사적비
기와불사
세심정(洗心亭)
한모금 깨끗한 물로 마음을 씻어라...
범종각(梵鐘閣)
불교에서 말하는 사물을 조성해 둔 곳으로
아침 저녁 예불 때, 법고.목어.운판.범종 순으로 친다.
범종은 그 소리로 인하여 일체중생이 번뇌로 부터 벗어나
지혜를 증장하고 깨달음을 얻게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관음전(觀音殿)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모든 중생들의 고난의 소리를 들으시고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이를 건져 주시는 분이 관세음보살이시다.
600년 노목 "향나무"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 또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이 법당의 주불(主佛)은 지장보살이다.
봉송각(奉送閣)
원구형 석조부도(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134호)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둥근 공모양 형태의 석조부도
팔각원당형 석조부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95호)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팔각형의 석조부도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
조사당은 신륵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고려말 3화상이라 불리는
지공·나옹·무학의 덕을 기리고 또 그들의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중앙에 목조의 나옹화상 독존을, 좌우에 지공과 무학선사의 영정을 봉안했다.
지공은 인도승으로 나옹의 중국 유학시절 스승이며, 나옹은 원나라 황제의 명에 의해
연경의 광제선사 주지로 부임했다가 후에 공민왕의 왕사가 되기도 했다.
무학은 나옹의 법통을 이어 받은 후법제자이며 조선 태조의 왕사이기도 했다.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
이 비석은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부도를 만들어 사리를 봉안하고
그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비문은 목은 이색 선생이 짓고, 한유가 글을 썼으며,
이인중이 새겼다. 비의 뒷면에는 약200여명의 문도와 승속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종모양 같아서 석종이라고 한다.
석종비 기록으로 보면 나옹화상 입적(1376년) 3년 후인 고려 우왕5년(1379)에 건립되었다.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보물 제231호)
보제존자 나옹의 석종 바로 앞에 그 형태가 매우 아름다운 석등이 있다.
석종부도를 장엄하기 위한 공양구로서 바로 묘탑 앞에 건립된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석등의 재료는 화강석을 사용하고 있으나 유독 화사석은 납석을 사용했다.
또 이곳에 비천(飛天) 또는 용을 새겨 매우 화려함을 나타내고 있다.
석종의 형태가 매우 묵직하고 또 세부의 섬세한 조각을 피한 남성적 작품이라면
이 석등은 매우 섬세하고 또 전면에 걸쳐 아름다운 조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적 작품이라 할 것이다.
삼성각(三聖閣)
독성과 산신과 칠성을 함께 모신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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