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경주시

선덕여왕릉 & 분황사

자즐보 2009. 12. 25. 23:23

 

 

 

 

 

 

  경주 낭산(선덕여왕릉이 있는 산)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

 

 

 

 

 

 

   분황사 :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

 

 

분황사 보광전
 보광전 안에는 조선 영조 때 조성한 약사여래 입상이 모셔져 있다.

 

 

분황사 약사여래입상
분황사 보광전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입상은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다.
약그릇 뚜껑 안쪽에 '건륭삼십년'이라는 붉은 글씨가 남아 있어
조선 영조 50년(1774)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기단은 벽돌이 아닌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모퉁이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다.

 

1층 몸돌에는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양쪽에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인왕상(仁王像)을 힘찬 모습으로 조각해 놓았다.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분황사 석탑 1층 감실 입구를 지키는 인왕상
석탑 4면에 각각 감실문과 인왕상이 축조되어 있으며,
인왕상은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장으로 금강역사라고도 한다.
상체는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굳게 쥐고
탑과 감실안 불상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 

 

 

 

 

 

 

분황사 석탑 기단 위 물개상
바다쪽을 바라보며 왜구들의 침입을 경계한 듯... 

 

 

 

분황사 석탑 기단 위 사자상
앞발을 치겨 세우고 뒷발에 힘을 주고 앉아 육지 쪽을 바라보며
힘차고 강인한 모습으로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경계하는 역할을... 

 

 

 

분황사 범종각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고려 숙종의 지시로 만든 원효대사비의 받침돌이다.
숙종은 원효가 동방의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비석이나 시호가 없어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겨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우게 하였다.
현재 비는 없어지고 조선 후기에 추사 김정희가 이 받침돌을 발견하여
원효대사비임을 확인하고 받침돌 상단에 자신의 글씨로
'화쟁국사지비적'이라고 음각해 놓았다고 한다.  

 

 

 

분황사 대원심보살 사리탑과 불상
조선 후기에 수행정진하다가 열반에 든 대원심보살이라는 분의 사리탑과
무릅 아래가 땅 속에 묻힌 불상이 한 기 모셔져 있다. 

 

 

 

분황사의 석자재들...

분황사 경내에는 주변에서 발견된 초석, 불상 대좌, 석등의 일부분,

탑의 부재였던 석자재들을 모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