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와룡면

오천유적지1

자즐보 2009. 12. 25. 23:05

 

 

안동 군자마을

 

안동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와룡면소재지를 지나 가다보면

오른쪽 산중턱에 수십채의 기와집이 남향으로 자리잡은 마을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광산김씨 오천유적지로  군자마을이라 불리는 문화재단지이다.

 

35번 국도 군자마을 입구 

 

 

 

광산김씨 예안파(입향시조 김효로)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예안면 오천리에서 약 21대에 걸처 600여년 동안

세거해온 동성마을이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조상들이 일궈 온

터전을 떠나 1974년 이 곳으로 집단 이건되었다.

 

본래 있던 자리에서 풍기는 의연함을 잃어버려 애석하지만

옛 조선가옥의 멋과 격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선경유방 유장백세善慶遺坊 流長百笹" (선을 행하고 쌓음으로서

집안에 경사가 있고, 그 가풍이 영원히 이어 간다)라는 뜻이다.

 

 

오천유적지 안내도

 

 

 

 

 

오천유적지 전경

광산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건물들이다.

종택의 본채는 현재 이 곳에 없고,,,

 

좌측 앞 건물이 재사, 그 뒤 ㄱ자 건물이 종택의 별당인 후조당,

오른쪽이 후조당 별채,  그 옆이 읍청정, 그 앞이 설월당이다.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광산 김씨 중 오천리에 가장 처음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김효로(1445∼1534)와

증손자 김해(1555∼1592)를 모시고 있는 사당과 후조당에 부속된 재사이다.

김효로가 죽은 지 2년 뒤인 조선 중종 31년(1536)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오다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영남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순절한 김해를 같이 모시고 있다.

 

 

 

 

 

 

후조당(後彫堂) 

조선 선조 때의 문신 후조당 김부필(1516∼1577)이 지은 건물이다.
광산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종택은 별당·정침·사당·재사·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정침에 부속된 건물이고 팔작지붕이다.
앞면 4칸·옆면 2칸의 '一'자형에 오른쪽으로 2칸 마루와 방을 달아 'ㄱ'자형을 이룬

큰 규모의 별당이다. 정침 왼쪽 담장 안에 있으며, 정침으로 통하는 협문과

정문을 갖추었고 왼쪽에는 사당으로 통하는 신문(神門)이 있다.
‘후조당’이라는 현판은 스승인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조당(後彫堂)'은 안동 한옥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내부를 보면 '그저 그런 집이려니' 하는 생각은 완전히 빗나간다.

마루문을 사방으로 들어 올리는 구조의 '후조당'은 안동의 고건축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매우 화려한 집이다. 화려함은 당시에도 화제가 되어

1567년 낙성식에 초대받은 퇴계가 '끝내 마루에 오르지 않고

현판만 써 놓고 가버렸다.'는 전설이 생기기도 했다.

 

 퇴계는 후조당의 신축을 축하하면서 "들으니

집을 너무 화려하게 지어 매화 운격에는 맞지 않아

언우(彦遇 김부필의 자)가 병이 날 지경이라 하여

이를 위로 한다."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사당(祠堂) 

 

 

 

후조당의 별채 

 

 

 

 

 

 

 

읍청정(揖淸亭) 

읍청정 김부의가 건립하였으며, 현판은 퇴계선생의 친필이다.

 

 

 

 

 

 

 

설월당(雪月堂) 

설월당 김부륜이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정자

 

 

 

 

 

 

장판각(藏板閣)

 

 

 

군자리 상징수 느티나무

안동댐으로 수몰되기 전까지 6백년 동안 세거해 온 원터에 있었던

느티나무의 2세목으로 1974년 이 곳으로 집단 이거시 함께 가져 와 심은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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