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6일
윤관장군묘역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산4-1 소재 / 사적 제323호
임진왜란 전후까지 후손들에게 그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1764년(영조40) 치제(致祭)하게 함으로써 윤관의 묘소임을 공인하게 되었다. 묘역시설로는 여충사(麗忠祠, 1979년 건립)ㆍ묘비(墓碑)ㆍ분수재(汾水齋)ㆍ 교자총비(橋子塚碑, 철종 12년 건립하였으며 윤관이 출정 때 하사된 교자를 사후에 부장한 것) 등이 있다. 이 묘소를 사적으로 지정한 것은 묘소의 고고학적인 측면보다는 윤관이 견지하고 실행하였던 북방강토 수호 및 개척의 사실을 널리 알리고 계승함에 있다. <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묘소는 1111년(예종 6)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500여 년이 지난
윤관의 구비파편(舊碑破片)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영조가 봉분을 새로 조성하고
1766년 묘 앞에 현존하는 묘비를 세워 묘소를 찾게 된 경위를 기록하였다.
여충사(麗忠祠) 문경공 윤관장군묘역(文肅公 尹瓘將軍墓域)
윤관(?∼1111)은 태조를 도운 삼한공신(三韓功臣) 신달(莘達)의 고손이며
검교소부소감(檢校小府少監)을 지낸 집형(執衡)의 아들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고려 문종(文宗)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숙종 9년(1104)에
동북면행 영병마도통(東北面行 營兵馬都統)이 되어 국경을 침범하는
여진정벌에 나섰으나 여진의 강한 기병에 패하고 임기응변으로 강화를 맺고 철수하였다.
그후 특수부대인 별무반(別武班)을 창설 대원수(大元帥)가 되어 예종2년(1107)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함께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아 국방을 수비케하였다. 윤관은 문무(文武)를 겸한 공신으로 예종6년(1111)에
돌아가자 1130년(인종 8) 예종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
고려문하시중령평백 문경공윤관장군신도비
高廬門下侍中鈴平伯 文肅公尹瓘將軍神道碑
추충좌리평융탁지진국공신 수태보문하시중 문경공윤관대원수사적비
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 守太保門下侍中 文肅公尹瓘大元帥事蹟碑
여충문(麗忠門), 외삼문
진국문(鎭國門), 내삼문
여충사(麗忠祠),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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