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로서원(賀老書院)
김천시 양천동 830 소재
마을 어귀 갓을 쓴 선비 형상의 자연석 돌
賀老(하노) 선비의 얼이 담긴 내 고향, 음각되어 있다.
하로서원은 1648년(인조 26) 사림의 추모로 원동에 노촌 이약동 선생을
배향하는 청백서원으로 건립하여, 1648년 김산 자산동으로 옮기면서
경렴서원으로 개명하고, 향유(鄕儒)는 김종직, 조위, 최선문, 김시창, 이약동 등을,
송유(宋儒)로는 주돈이, 주희암, 문문산을 배향하였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84년에 훼철된 경렴서원을 복원하기 위해 타 문중들과 숙의 하였으나
뜻이 맞지 않아 벽진이씨가 중심이 되어 서원을 복원하였다. 복원 당시 마을 이름을 따서
하로서원으로 정하였으며, 현재 이약동선생만 배향하고 있다.
현재 벽진이씨 평정공파 종회가 서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양촌동은 전통적으로 벽진이씨의 집성촌이다. (자료출처:한국서원이야기)
강학공간에는
대문채, 강당인 노촌당, 동재 염수재, 서재 필유재로 배치되어 있다.
하로서원 대문채
하로서원 편액이 걸린 강당, 대청에는 노촌당(老村堂) 편액이 걸려 있다.
동재 염수료(念脩寮)
서재 필유재(必有齋)
비각(碑閣)
평정공노촌이선생유허비(平靖公老村李先生遺墟碑)
서원에서 사당으로 통하는 협문은 여재문(如在門)이다.
이약동(李約東, 1416~149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 희목(希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존실(存實)이고, 아버지는 증 호조판서 덕손(德孫)이며, 어머니는 유무(柳務)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조위(曺偉) 등과 교분이 깊었다.
1441년(세종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뒤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을 거쳐 1454년(단종 2) 감찰·황간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458년(세조 4) 지평(持平)이 되고, 이듬 해 사직했다가 1464년 선전관으로 복직하였다. 1466년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고 구성부사 등을 역임하다가
1468년 병으로 사직하였다.
1470년(성종 1) 제주목사 때 관아 이속들의 부정과 민폐를 단속, 근절시키고 공물의 수량을 감해
백성의 부담을 더는 등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다. 또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모르고 들고 온
관물(官物)인 말채찍을 성루 위에 걸어놓고 왔으며, 항해 중 배가 파선의 위기에 놓이자 하늘을 속인
노여움이라 단정하고 배 안을 살펴 부하들이 몰래 넣어둔 갑옷을 찾아내 강물에 던진 투갑연(投甲淵)의
일화는 유명하다.
1474년 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거쳐 1477년 대사헌이 되어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 해 경주부윤이 되었으며, 호조참판·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1487년 한성부좌윤·이조참판 등을 거쳐,
1489년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하다가 1491년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치사(致仕 :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남)하였다.
금산의 경렴서원(景濂書院), 제주도 귤림서원(橘林書院)에 제향되었다. 성종 때 청백리로 뽑히고
기영록(耆英錄)에 올랐으며, 저서로는 ≪노촌실기≫가 있다. 시호는 평정(平靖)이다.
제향공간에는
영사문, 숙경문(내삼문), 청백사(사당)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영사문(永思門)
내삼문인 숙경문(肅敬門)
사당 청백사(淸白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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