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顯忠日)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장병들과 순국선열의
충절을 기리고 그들의 얼을 위로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정한 추념일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독립을 했다.
하지만 일본의 패망을 이끈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북위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 후 유엔은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의했지만
북한과 소련이 이를 거부함으로서 결국 1948년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열려
국회가 구성되고 헌법을 제정 공포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한을 공산화하려는 목적으로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남한을 불법침략하였으니
곧 6.25전쟁이 발발되었다.
이 전쟁으로 40만명이 넘는 군인과 경찰,민간인이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고, 정부는 1956년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충절을 기념하는 뜻에서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하였다.
왜, 6월 6일을 현충일로 택했을까???
그것은 망종(芒種)과 관계가 있다. 망종은 24절기 중에서
9번째 절기로 보리베기와 모내기로 바쁜 시기이다.
우리 선조들은 24절기 중 청명과 한식에는 사초(묘에 잔디를 입히고
다듬는 일)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는 보리를 수확하는 감사와
모내기 후 풍년이 들게 해주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었다.
고려사에는,
"전쟁에서 죽은 방수군(고려시대 중앙군으로서 일정 기간
국경지역을 지키던 군인)은 관청에서 장례도구를 지급하고
그 유골함을 역마로 각 집에 보내주도록 하라. 장삿길이나
여행길에 죽어 그 이름이나 본관을 알 수 없는 자는
죽은 곳의 관청에서 가매장하되 그 어림 나이나 신체의
특징을 기록해 두어 의혹이 없도록 할 것이며,
앞으로 이를 관례로 삼아라." 고려의 제8대 왕 현종이 1014년
(현종 5) 6월 6일에 내린 어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이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뼈를 집으로 봉송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한것이다.
우리 정부가 현충일을 정한 1956년의 망종날이
때마침 6월6일이었고, 6.25전쟁이 발발한 6월과
24절기 중 제사를 지내던 풍습이 있던 망종을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는 기념일인 현충일로 정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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