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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흑룡의 해???

자즐보 2012. 1. 1. 17:16

 

 

 

2012년 흑룡의 해???

 

「'60년 만에 흑룡의 해가 돌아왔다' '흑룡의 해에 아기를 낳으면 좋다'

'흑룡의 해에 결혼을 하면 잘 산다'.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들이지만

'흑룡'을 둘러싼 이런저런 사담(私談)이 올해엔 유독 뜨거운 모양새다.」

 

이 내용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용(龍)...

그것도 흑룡의 해라 하여 기대감을 갖거나 각오를 새로이 다지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 임진년은 하필이면 龍 가운데에서도 흑룡의 해인 걸까???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은, 임진년이나 신묘년 등 한 해의 이름을 붙이는

기준이 되는 것은 육십갑자라는 것을...

이것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10간과, 자(쥐), 축(소), 인(범), 묘(토끼), 진(용), 사(뱀), 오(말), 미(양), 신(원숭이),

유(닭), 술(개), 해(돼지)의 12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둘의 조합이 60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각각의 동물이 무슨 색인지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10간인데, 다음의 표를 보자.

 

 

위의 표에 따라, 그 해를 상징하는 동물이 무슨 색인지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병자년이라고 하면 붉은 쥐의 해, 신미년이라고 하면 흰 양의 해,

계유년이라고 하면 검은 닭의 해가 되는 것이다.

 

간혹 가다 들리는 '백호의 해',  '황금 돼지의 해'도 위의 표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에서 흑룡이란 과연 어떤 동물이었을까?? 

흑룡의 해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역사적으로 흑룡은 길조보다는 흉조를 알리는 상징이었다.

 

현존하는 한국의 역사서 가운데 대표격이라고 할 만한 <삼국사기>에서,

흑룡이 등장하는 구절을 찾아보면...

 

29년... 가을 9월에 흑룡이 한강에 나타났는데 잠시 구름과 안개로

어두워지더니 날아가버렸다. 왕이 돌아갔다.」

-백제본기 3, 비유왕조- 

 

「3년... 5월에 흑룡이 웅진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내신좌평 곤지가 죽었다.

4년 가을 8월에 병관자평 해구가 권력을 제멋대로 부려 법을 어지럽히고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왕이 능히 제어하지 못하였다. 9월에 왕이 사냥나가 밖에서 묵게 되자

해구가 도적으로 하여금 해치게 하니 드디어 돌아갔다.」

-백제본기 4, 문주왕조-

 

「20년... 5월에... 검은 구름이 용과 같이 동서의 공중에서 서로 싸웠다.」

-백제본기 6, 의자왕조- 

 

이상과 같이 흑룡은 백제본기에서만 보이는 듯 한데, 세 가지 기사 모두

흑룡이 출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왕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자왕조의 경우 의자왕 재위 20년째는 서기로 660년, 즉 백제가 멸망하는 해에 해당한다.

또한 문주왕조 기사에 보이는 곤지라는 인물은 왕족일 뿐만 아니라 15년 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에 백제의 세력을 키우는데 공헌한 중요한 인물이었다.

 

이상으로 미루어 흑룡은 왕의 죽음을 알리는 불길한 존재로 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멸망

삼국사기에는 백제 말기의 여러가지 불길한 징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비록 흑룡은 아니더라도 흑룡과 같은 구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신라본기나 고구려본기에서는 흑룡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는데,

백제본기에 따르면 흑룡의 출현은 왕의 죽음이나 나라의 멸망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서 龍이라고 하면 대개 좋지 않은 존재로

취급된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 주장을 해결하기 위해, 고구려본기와 신라본기의 기사를 참고하면...

 

2년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므로... 3년 봄 3월에 황룡이 골령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경운(慶雲)이 골령의 남쪽에 나타났는데 빛이 청적색이었다.」

-고구려본기 1, 시조 동명성왕조-

 

「14년 봄 2월에 왕은 소속 관원에게 명하여 월성 동쪽에 신궁을 건축하게 하였는데,

황룡이 그 땅에 나타나므로 왕은 괴이하게 여겨 사찰로 고치고 황룡사라 부르게 하였다.」

-신라본기 4, 진흥왕-

   

먼저 고구려본기를 보면, 동명성왕 2년과 3년은 신생국가 고구려가

송양 세력을 합병하는 등 세력을 점차 확장시켜 나가는 때였다.

 

황룡 출현 기사에 뒤이어 길조를 알리는 구름이 나타났다는 내용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여겨지며, 이후 6년과 10년에는 행인국과

북옥저를 정벌해 고구려의 성읍으로 삼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신라본기의 기사는 황룡사 건립 이야기로 비교적 유명하다고 여겨지는데,

황룡사는 선덕여왕이 병이 들었을 때 백고좌를 베풀고 인왕경을 강독하게 하는 한편

진성여왕 때에도 백고좌를 열고 왕이 친히 발걸음을 하는 등 신라의 가장 중요한

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으나 신라본기에 황룡사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는 것과

황룡사에 9층탑이 세워졌다는 것 또한 황룡사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황룡사 9층목탑(모형)

흑룡과 달리, 황룡은 길조를 알리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삼국사기에는 위에서 소개한 것 외에도 용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흑룡이나 황룡, 청룡이라고는 되어있지 않고 단순히 용이라고만 되어있다.

 

 

위에서 흑룡의 출현이 불길한 징조라고 언급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흑룡이 불길한 징조라는 것도, 임진년이 흑룡의 해라는 것도,

그리고 올해가 임진년이며 2012년이라는 것, 아니 올해라는 개념조차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올해가 불길한 흑룡의 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용의 해를 맞아 담배를 그만 피우겠다거나, 도박에서 손을 떼겠다거나,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용의 해...

흑룡의 해라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의지해서는 안될 것이다.

용의 해니까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것이라고 생각해 태만해지거나,

불길한 해니 만사에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고 필요 이상으로

소심해질 필요는 없다.

 

새로이 각오를 다지는 것은 좋지만, 그 각오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흑룡이 할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할 일이다.

 

그리고 올해가 불길한 해든 아니든 간에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물러나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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