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영덕군

신돌석 장군 유적지

자즐보 2009. 12. 2. 21:29

 

 

 

 

  

신돌석장군 유적지

 

신돌석(申乭石) 장군(1879~1908) 조선시대 말기의 의병장

고종32년(1895)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19세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의 최신식무기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광무9년(1905)을사조약이 비밀리에 체결되어

국가의 운명이 위급해지자 다시 의병을 일으켜

영덕.울진.삼척.강릉.영양.청송.봉화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큰 전적을 올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념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의병대장신공유허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순국의사신돌석장군기념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충의사,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영릉의병장 장산 신돌석(본명 신태호)장군은 1878년 11월 3일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복디미)에서 부친 신석주와 모친 분성김씨 사이에

2남 2녀중 셋째로 태어났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항일의식이 남달랐고

애국애족하는 마음이 강하였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조국의 운명이 위급해지자

무력으로 적과 싸울 것을 결심, 1906년 영해에서 의병 300명을 일으켜 진군을 개시하였다.

울진군 평해면으로 가서 다시 3,000 여명의 의병을 재편하고 여러 차례 일본군과 접전,

경상도.강원도 일대와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기습적으로 많은 적을 사살하는등 가는 곳 마다

큰 전과를 올렸으며 그 만큼 명성도 높았다.  그러나 일본군의 병력도 증원되어

부득이 일월산, 백암산 등지로 퇴각하면서도 일본군의 요소마다 큰 타격을 입혔다.

 

1907년 12월 서울 공격을 목적으로 13도의 의병이 연합하기로 하고

13도 창의군 교남창의대장으로 천거되었다. 일본군은 그를 체포할 목적으로

현상금을 걸었는데 그 현상금을 탐낸 주민이 일본군에 매수되어 그를 집으로 초대

독주를 먹여 취하게 한다음 무참히 살해하였다. 이때 일기 30세이다.

국가에서는 1962년 건국공로훈장을 추서 하였다.

 

관리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장군이 1905년 울진 평해 월송정에 올라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자 애국충정으로 읊은 시

登樓遊子却忘行 (등루유자각망행) 누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잃은 채

可歎檀墟落木橫 (가탄단허낙목횡) 단군의 옛 터가 쇠퇴함을 한탄하네

男兒二七成何事 (남아이칠성하사) 남아 스물일곱 이룬것이 무엇인가

暫倚秋風感慨生 (잠의추풍감개생) 추풍에 의지하니 감개만 솟는구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 > 영덕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덕 바다  (0) 2013.03.03
영해 곡강고택 & 곡강정  (0) 2013.03.03
대봉재사(大峯齋舍)  (0) 2013.03.03
화수루,청간정,까치구멍집  (0) 2013.03.03
영덕군 강구항  (0) 2010.02.22